이 여름을 기억해

박성언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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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언의 음악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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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름을 기억해

‘여름’이라는 제목으로 뉴스레터에 첫 글을 쓴 게 벌써 한 달 전이라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 계절은 어느덧 입추를 지나 가을을 향해 갑니다. 올 여름은 정말 더워도 너무 더웠지만 막상 이 여름을 보내려니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김신회는 <아무튼 여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 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이례적 폭염과 계속된 열대야 속에서도 이 여름을 견디게 한 건 우리 일상에 밀도와 입체감을 가져다 준 ‘당신이 좋아하는 무언가’ 덕분일 겁니다. 그건 물놀이 일 수도, 초당 옥수수일 수도 있겠지요. 제게는 ‘콩국수’가 그렇습니다. <아무튼 여름>의 부제는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인데요. 시간이 흐르면 여름은 돌아오겠지만 ‘올해의 나’는 영영 돌아오지 않으니, 지금 이 계절의 내가 그리워지는 일은 한낮의 더위처럼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콩국수가 없었다면 저는 올여름을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2024년 여름에 콩국수를 먹는 내 모습을 미리 그리워하며 한 그릇, 한 그릇 저는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콩국수를 먹었습니다.

저는 순천 ‘ㅈㄷ콩국수’를 가장 사랑합니다. 1965년부터 거의 60년 째 사계절 내내 콩국수를 팔아온 이 가게에서 콩국수를 먹을 때 저는 이 계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그란 은그릇에 콩물이 수북합니다. 면은 잠겨 보이지 않습니다. 소금 조금과 기포 몇 개가 밋밋한 표면에 입체감을 주는데 그 모습이 마치 달의 표면처럼 보입니다. 가을밤 선선한 바람을 쐬며 크고 둥근 달을 바라볼 날이 멀지 않으니 이 더위를 조금 견뎌보라는 격려이겠지요. 콩물을 먼저 한입 들이켭니다.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시원하고 다소 거친 질감이 입안을 흥건히 적시면, 다소 진부한 표현입니다만 입 안에 이 여름이 한 가득 들어찹니다. 자, 이제 모여 있는 소금을 해체해 잘 섞어줍니다. 전라도에서는 콩국수에 설탕을 듬뿍 넣어 먹는데요. 서울 촌놈인 저는 그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설탕은 콩의 풍미를 산산조각 내고 당신의 건강을 위협할 것입니다. 적당히 소금 간이 배인 콩물을 다시 한 번 들이켠 후 이제 본격적으로 면을 걷어 올려 황홀한 시간을 맞습니다. 눈은 저절로 감기고 입가엔 웃음이 번집니다. 정말 말끔히 순수한 기쁨입니다. 정말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아! 이 여름이 가기 전에 한 번만 더! 아니 몇 번만 더 그곳에서 콩국수를 먹을 수 있다면!

첫 글에서 저는 조앙 질베르토의 <여름>이라는 곡을 소개했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하고 싶은 곡은 김현철의 <그 여름을 기억해>입니다. 김현철의 10집 앨범 ‘돛’에 수록된 노래인데요. 노랫말을 여기에 옮깁니다.

아이 가득 몰고 다니던 소독차
멀리서도 냄새 구리던 오물차
쌀가마니 잔뜩 싣고서 뒤뚱대던 동네 쌀집 자전거
그 이발소 탈탈대며 돌아가던 선풍기의 뜨거웠던 뒷덜미
고교야구 중계소리가 한창이던 트랜지스터 라디오
지금 나의 기억 속에 조각조각 남은 단상들
그립고도 그리워라
갈 수 없는 나의 어린 날
어디선가 잔뜩 묻혀온 흙먼지
얼굴 가득 땀에 범벅된 땟국물
밥 먹어라 엄마의 고함이 싫지 않던 저녁 때 땅거미
지금 나의 기억 속에 조각조각 남은 단상들 그립고도 그리워라
갈 수 없는 나의 어린 날
갈 수 없어 더 가고픈지도 몰라
그 계절과 그 동네안의 그 냄새
온 매미가 참 시끄럽게도 울어대던
그 여름을 기억해
그 여름을 기억해
그 여름을 기억해

순천에 콩국수 한 그릇 먹으러 가는 길에 이 노래를 듣습니다.

“쏴아~” 먹고 나오니 동천에 매미 소리가 그득합니다.

내 가장 어린 날의 이 여름을 저는 이렇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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