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 에스프레소 머신의 변천사
스페셜티커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Chapter #6 : 에스프레소 머신의 변천사
현대의 카페는 대부분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하는 커피를 다루고 판매합니다. 진한 농도의 에스프레소는 우유와 만났을 땐 진한 카페라떼가 되고 물을 만났을 땐 아메리카노로 우리의 삶에 빼놓을 수 없는 커피메뉴가 되었죠.
에스프레소를 드셔본 적 있으신가요? 남들이 잘 마시지 않는 에스프레소이기에, 커피의 본 고장 이탈리아에서 즐겨마신다기에 도전해본 에스프레소 커피는 너무 진하고 쓰지 않았었나요? 그런 맛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생각보다 잘 만들어진 에스프레소를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에스프레소 한잔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가 똑같은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데 너무나 많은 제약을 주기 때문이죠. 다른 추출방법에 비해 많은 에너지를 이용해 물에 잘 녹지 않는 지용성 성분과 탄수화물 성분까지 많이 뽑아내기에 의도한 에스프레소를 완벽하게 내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20세기에 들어 첫 형태의 에스프레소 머신이 발명된 후 에스프레소 머신은 정말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물론 그 변화와 혁신은 지금 2024년에도 계속되고 있죠.
1901년 루이지 베제라(Luigi Bezzera)가 만든 증기 가압식 에스프레소 머신의 초기 형태를 만들면서 에스프레소 머신 시장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밀폐된 보일러 내부에 물을 넣고 끓였을 때 대기압보다 높은 증기압(높은 에너지)으로 커피 추출을 더욱 빠르고 진하게 내릴 수 있었죠. 또한 기존 대량으로 만들어 나누어주는 방식이 아닌, 주문 즉시 제조할 수 있다는 신선함도 겸해 에스프레소 머신의 발명은 커피역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베제라의 에스프레소 머신도 완성형은 아니었습니다. 1.5Bar 정도의 높은 압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보일러 내부 추출수의 온도는 120도를 넘어 커피에서 과도한 성분추출이 이루어져 쓴맛이 주를 이루었죠.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에너지의 근원을 높은 온도와 압력이 아닌 용수철의 물리적인 힘을 사용한 가찌아(Achille Gaggia)의 에스프레소 머신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수동으로 잡아당긴 손잡이는 추출 그룹과 이어진 두꺼운 용수철을 늘이고, 손잡이를 놓으면 원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스프링의 힘에 의해 커피를 짜낼 수 있게 되었죠. 기존 베제라의 에스프레소 머신이 1.5Bar 의 압력에너지를 이용해 커피를 내렸다면, 가찌아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더 낮은 온도로도 10Bar에 달하는 높은 추출 에너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가찌아의 에스프레소 머신의 형태는 현대에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 감성의 수동 피스톤 레버식은 아직도 클래식을 사랑하는 바리스타들에게 애용되고 있죠. 하지만 피스톤 레버식은 스프링의 힘을 이겨내는 높은 많은 힘이 들었고, 잦은 부상을 야기했습니다. 이에 사람의 힘을 대신할 기계를 이용해 압력을 만들어내는 시도가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1961년. 이 해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역사에 길이 남는 훼마(Faema)의 E-61 에스프레소 머신이 탄생하였습니다. 온도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열교환식 보일러를 고안하고 모터펌프를 이용해 사람의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높은 압력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또한 추출을 담당하는 그룹헤드에 물이 고일 수 있는 챔버 공간을 만들어 뜸들이기(Pre-Infusion) 기능을 물리적으로 구현해냈습니다.
이후 다양한 에스프레소 머신 제조사들은 상업용 모터펌프를 채용한 에스프레소 머신을 기본으로 각자만의 철학을 에스프레소 머신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피렌체에 위치한 라 마르조꼬(La Marzocco)는 1970년 추출수의 온도편차를 줄이고 온도 유지력을 높이기 위해 2개의 심장(보일러)를 가진 포화그룹의 헤드형태를 지닌 GS 에스프레소머신을 탄생시켰습니다. 일반적인 머신이 보일러에서 추출되는 그룹헤드까지 추출수를 이동하는 동안 열손실이 겪는 것을 방지하고자 그룹헤드와 보일러가 일체화된 2번째 보일러를 가진 에스프레소 머신이었죠. 이는 현재의 하이엔드 에스프레소머신의 기본소양인 온도유지를 위한 듀얼보일러(2개의 보일러) 혹은 멀티보일러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의 개념이 등장하고 고품질 커피를 소비하는 소비자들과 바리스타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에스프레소 머신 시장도 큰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기존엔 어떻게 하면 매 추출마다 재현성을 높게 유지할 지 고민하며 온도를 유지하는 기술과 설계가 중심이 되었다면, 어떤식으로 에너지를 이용하고 변화해 에스프레소 추출을 자유롭게 컨트롤 할지에 대해 관심이 대두되었죠.
그래서 2009년 등장한 라마르조꼬의 스트라다(Strada)는 바리스타가 추출하는 동안 압력을 자유롭게 조절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메인으로 밀어주는 모터펌프 이외에 그룹헤드 아래에 기어모터로 작동하는 소형 기어펌프를 추가로 탑재해 압력(에너지)를 추출하는 동안 자유롭게 조절하며 에스프레소를 바리스타의 입맛에 맞게 컨트롤 할 수 있게 하였죠.
어떤 이는 온도에 주목했습니다. 1927년 설립된 란실리오(Rancilio)는 추출하는 동안 추출수의 온도를 변화시켜 열 에너지를 컨트롤 할 수 있게 하는 RS1 머신을 만들었습니다. 추출 초반엔 93도의 추출수 온도가 후반부엔 낮은 온도거나 높은온도로 변경시켜서 추출 할 수 있도록 설계했죠.
또한 미국의 듀발(Duvall Espresso)은 기존의 압력수치로 추출을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유량을 0.01cc 단위로 조절하며 추출되는 에스프레소의 전체 추출량을 실시간으로 변화시키며 추출할 수 있도록 한 FC-1 머신을 개발하였습니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에스프레소 머신. 수려한 디자인으로 무장한 에스프레소 머신도 있지만, 새로운 기술과 보완된 설계 등을 적용한 다양한 신제품 에스프레소 머신은 매해 새롭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 이르러 어느덧 에스프레소 머신의 추출 역학에서 새로운 신개념과 기술은 없어보입니다만 과거에도 그랬듯 우리는 늘 더 나은 커피를 위해 답을 찾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