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 비닐의 계절
김계수의 농사 일기
농사이야기 : 비닐의 계절
한우나 젖소를 키우는 농가들은 대부분 벼농사를 많이 짓는다. 벼농사의 부산물인 볏짚이나 벼 후작으로 재배하는 풀을 사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농가들은 모내기가 시작되기 전 열흘 정도의 시간이 1년 중 가장 바쁜 철일 것이다. 가을에 벼를 수확하기 전에 논에 씨를 뿌려서 봄에 자란 풀(대부분이 수입종인 이탈리안라이그라스)을 수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되도록 늦게 베어야 하고 모내기를 제때 하기 위해서는 작업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모내기 직전의 들판은 잠시 공룡알이라 불리는 풀 덩어리 천지가 되어 자못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보통 직경이 1m가 넘고 무게는 500∼600kg 정도 되는 이 풀 덩어리는 매우 질긴 랩 비닐로 단단하게 포장되어 한 곳에 보관해두고 소먹이로 쓰게 된다. 이렇게 갈무리되면 비에 젖을 염려가 없기에 빈터만 있으며 얼마든지 저장할 수 있어 축산 농가로서는 참 고마운 존재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환경과 토양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낳게 된다.
우선 비닐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공룡알 하나를 감싸는 데에는 폭이 70cm 정도 되는 랩용 비닐이 100m 넘게 쓰인다. 논 300평에서 공룡알이 서너 개 나오는데, 이것을 전국으로 확대해보면 총량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농가에서 쓰고 나온 폐비닐은 재활용을 위해 수거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불법으로 소각되거나 무단으로 버려져 하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둘째, 화학비료를 너무 많이 쓴다. 가을에 싹을 틔운 풀은 봄에 본격적으로 크기 시작하는데, 농가에서는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비가 오기 전날 질소질 화학비료를 살포한다. 수확까지 대개 세 번은 주는 것같다. 이렇게 과다하게 뿌려진 비료는 땅을 산성화시키고 재배된 풀을 먹은 소의 고기는 아질산염이라는 건강에 해로운 물질을 포함하게 되며, 비료의 일부는 공기 중으로 날아가 아산화질소라는 강력한 온실가스(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의 250배)로 작용하게 된다.
셋째, 땅은 육중한 농기계로 몸살을 앓는다. 풀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풀을 베고, 모으고, 뭉치고 감싸기까지 최소한 네 번에 걸쳐 작업기를 장착한 트랙터가 논을 휘젓고 다녀야 한다. 풀이 무거운 데다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해 트랙터는 갈수록 커져서 요즘에는 100마력짜리 집채만 한 트랙터가 흔하다. 가격도 웬만한 수입 자동차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이렇게 무거운 기계가 땅을 밟아대니 땅이 단단해져서 이를 갈기 위해서라도 큰 기계를 필요로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봄철 한 번으로도 안타까운 이 풍경은 가을에 볏짚을 갈무리하기 위해 한번 더 똑같은 과정이 반복된다. 농약과 비료와 기계 등으로 땅이 학대받고 혹사당하고 있다.
한겨례 신문 칼럼 필진 참여 귀촌귀농인 김계수
🎶 에디터의 노트 : 저는 이 글을 읽고 농업과 축산업의 현재 관행이 환경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깨닫게 되었어요. 지속 가능한 농업 방식을 고민하고 개선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