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사람들이 들려준 섬살이
‘이제는 섬이다’ 정태균의 섬 타임즈
섬 주민들의 경험지식을 기어이 이어받아 현재에 전하고자 이 섬 저 섬 다니며 담아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섬’ 이라는 이유로 섬 주민도 방문객도 불편이 당연시 되는 일이 없도록 섬을 가꾸고 있습니다. 섬진강물이 흘러 들어가는 전남동부지역의 섬 살이를 찐하게 싱싱하게 전하겠습니다.
섬을 만나는 방법
물(水), 사람(人) 그리고 어머니(母). 이들의 만남이 바다〔海〕다. 바다는 모든 물을 품는다. 그 물로 둘러싸인 육지 (is + land)인 섬은 물 위의 땅이다. 섬은 더 큰 바다와 육지를 향한 디딤돌이자, 사면이 닫혀있는 고립의 공간이다. 섬은 이러한 양면성을 지닌 채 사람들을 품고, 떠나보내며 섬에 기대어 삶을 이어가는 이들을 보듬어준다.
거센 태풍을 버텨낸 돌담과 당산나무도, 파도가 만들어낸 진작지의 몽돌도, 갱번을 따라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바다생물도 다 섬이다. 마을 앞의 선돌과 팽나무, 모정 옆 중당의 당집과 당숲도, 갯바탕에서 용왕님께 바친 오쟁이도, 보리마당 앞 헌식상을 물린 뒤 한바탕 흥을 돋우는 산다이도 모두 바다사람들의 작품이다. 바다사람들과 고락을 함께 한 공간들에게 유쾌한 생명력을 불어 넣는 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섬의 미래다.
바람을 보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제각기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다. 샛바람은 동풍, 하늬바람은 서풍, 마파람은 대문 남쪽으로 마주 오는 바람이다. 북풍은 된바람 또는 높바람으로 표현한다.
섬에는 바람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자연에 순응과 응전하면서 살아왔던 바다사람들은 바다가 알려주는 메시지에 귀 기울였다. 섬살이에서 경험적으로 판단해왔던 지식과 지혜도 삶 속에 녹아내었고, 세대를 이어 삶이 되었다. 날씨의 좋고 나쁨은 생존과 직결되어 조업이나 농사를 방해하고 때로는 인명까지 위협하는 바람은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여수 고흥 바다사람들에게 가장 안전한 바람은 높하늬바람(북서풍)이라 했다. 하늬바람(서풍)이나 높하늬바람이 일면 지금은 당장 파도가 치고 있어도 운항이 안전하다고 할 만큼 가장 좋아하는 바람이다. 높바람(북풍)이 불면 이내 파도가 가라앉고, 서마파람(남서풍)이 불면 파도가 높아진다. 갈바람은 가장 서늘한 바람으로 고향의 바람이라고도 했다.
가장 두려워하고 꺼리는 바람은 마파람(남풍)과 서마파람(남서풍)이다. 여름철 남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습도가 높아 바다에 나가지 않아도끈적하게 불어오는 더운 바람이라 싫어한다고 한다. 마파람은 ‘후레아들 놈의 바람’이라 금세 비가 오다가 멎기를 반복해서 그리 불렀다고 한다. 남풍은 ‘마흔 닷새 하루아침을 분다’고 하여 그만큼 길게 분다는 뜻을 표현했다. 표면은 잔잔하지만 바다 속을 뒤집는 파도인 ‘밑뉘’가 일면 태풍이 오고 있는 것이라 하고, 구시월 갑자기 부는 돌풍인 ‘늦토지’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구름이 돌면서 떨어져 흘러가면 큰 바람이 불고, 검은 구름의 끝이 붉게 비치면 큰 바람이 불었다. 하늘을 나는 용모양의 용구름이 생기면 태풍이 분다고 했다. 여름철 해질 무렵에 해가 붉으면 며칠 후 비가 오고, 가을철 해질 무렵에 해가 붉으면 날이 좋다고 했다.
갯강구나 게가 집안으로 가까이 오면 나불(파도)이 있고, 돼지가 지푸라기를 물어다 구석에 쌓으면 비가 온다고 했다. 숭어가 뛰면 날이 궂고, 갈매기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고 했다. 쥐가 배에서 내리면 사고가 나거나 바람이 불어 고생하니 조업을 포기했다.
날씨와 동식물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표현하는 말 속에는 함축된 바다사람들의 경험지식이 존재한다. 예조와 금기로 공동체를 지켜왔다. 예조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징조로써 예견하는 일을 통해 삶을 공유했다. 특정한 인물·사물·언어·행위 등이 신성시되거나 또는 두렵다고 신봉함으로써 그 대상을 보거나, 말하거나, 만지거나, 행동하는 것을 금하는 금기로 미래를 공유했다. 바다사람들의 경험적 지식에 관한 관심도가 이 정도이고 보면 첨단 과학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던 옛 사람들의 지혜에 대한 신뢰도를 짐작할 수 있다.
섬사람들은 뭍사람들에게 홀대받아온 경향이 있다. 역사적으로 왜구의 침략을 피해 섬을 비우고, 유배지로 이용되었으니 뭍사람의 관점에서 섬은 버려진 땅이었고 섬사람들 또한 경시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현재까지도 잔존해 섬과 섬사람의 이미지 중 하나다. 육지의 시선으로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땅이 섬이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땅이 육지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바다사람이라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를 공유하는 일이 섬의 미래다.
🎶 에디터의 노트 :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혜와 생활 방식이 바람과 자연을 깊게 이해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섬의 미래는 전통과 문화를 얼마나 존중하고 보존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것, 기억해두겠습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섬사람들에 대한 육지인들의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건 정말 인상적이었답니다. 👏